주메뉴로 건너뛰기 컨텐츠로 건너뛰기
[매일경제] [국가대표 농식품기업] "삼성에서 축산업 첫발…내 농장 꿈꾸며 마흔에 창업"
등록일
2019-04-10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6,137

△ 윤희진 다비육종 회장(74·오른쪽)과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58)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위치한 종돈목장에서 새끼 돼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호영 기자]

 

◆ 前 농촌진흥청장 민승규가 간다 ◆

 

`황금돼지의 해`인 2019년 기해년(己亥年)을 맞아 `국가대표 농식품기업을 찾아 : 민승규가 간다`의 첫 인터뷰 상대로 우리나라 대표 양돈(돼지사육)·종돈(돼지개량) 기업인 다비육종(多肥育種·DARBY GENETICS)의 윤희진 회장(74)을 만났다. 올해로 창립 36주년을 맞은 다비육종과 46년간 양돈업에 종사해 온 윤 회장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기업형 양돈업의 역사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 23만9000t이었던 우리나라 돼지고기 생산량은 2017년 기준 89만4000t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6년에는 생산액 기준으로 돼지고기가 쌀을 이기고 한국인의 주식(主食) 자리를 꿰찼다.


다비육종은 전국 9개 농장에서 돼지 6만1000마리를 사육하고, 베트남에서 CJ와 공동으로 3개 농장에서 종돈 3만마리를 기르고, 연간 380만마리분의 돼지 종자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연간 매출이 1000억원에 육박하고 직원도 220명에 이르지만 다비육종을 아는 일반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유명인 추천 맛집인 신당동 `금돼지식당`, 미쉐린가이드 선정 빕 구르망 중 하나인 `광화문국밥`, 고급 식자재만 취급하기로 유명한 SSG 푸드마켓 등 돼지고기 맛이 일품이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다비육종이 자랑하는 한돈 브랜드인 `얼룩도야지`나 `듀록포크`가 있다. 지난달 말 경기도 안성시 다비육종 본사에서 2시간 넘게 진행된 윤 회장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축산업에 첫발을 들인 계기가 삼성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온 뒤 재벌 기업에 축산업을 하라고 권유했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던 이병철 삼성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회장은 공개 석상에서 "이제부터 삼성그룹의 미래 신산업은 전자와 축산"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 회장은 먼저 서울대 농대와 공대 전자과에서 인재를 추천받았다. 서울대 농대에서 18명을 추천했는데 최종 선발은 4명만 됐고, 이 회장이 직접 면접을 봤다. 4명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그게 1968년이었다.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아 5년간 미뤄지다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사업이 구체화된 후 돼지축사를 지었고 일본에서 종돈 614마리를 들여왔다. 용인 양돈장은 모두 5개까지 늘어났고 최대 6만마리까지 길렀다.

 

―삼성이 계속했으면 어땠을까.

▷삼성 자연농원 양돈장이 엄청난 실적을 올렸고 인재도 많이 배출했지만, 이 회장이 돌아가신 다음해(1989년)부터 대기업에 대한 양돈업계 저항이 거세졌다. 때마침 돼지 분뇨 무단 배출 사건까지 터지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대만에서 들어온 신종 질병도 유행했고 이건희 회장은 축산업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나는 삼성이 계속 축산업을 했으면 한국의 CP그룹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병철 회장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중국·동남아시아에서 사료·양돈 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삼성의 축산업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최신 양돈장 책임자를 역임하면서 이 일을 천직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삼성을 떠나 이천에 있는 선진(하림그룹 계열 양돈업체)에 몸담았다가 마흔 살에 안성으로 와서 창업을 했다. 왜 창업을 했느냐고 물었는데, 축산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자기 농장의 꿈을 가지고 있다. 당연한 것이다. 이병철 회장 곁에 있을 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당시에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비육종의 성공 원동력은 무엇인가.

▷28세 때 했던 결심을 잊지 않고 한 우물을 팠지만, 동시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고 했다. 내 농장도 키워야 했지만 산업 자체 수준을 높이고 시장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돈연구회를 조직했고, 우루과이라운드 시장 개방에 대응해 도드람양돈조합을, 질병 근절을 위해서는 민간방역본부를 조직했다. 기술적으로 최초로 시도한 것도 많다. 창문이 없는 무창돈사, 인공수정센터, 농장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호기심과 산업 발전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선진국과 격차가 얼마나 줄었나.

▷종돈 사업이 국제화되면서 이제 글로벌 종돈 기업이라 할 수 있는 회사는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이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는 아직 글로벌 종돈 기업이 없다. 다비육종의 기술력은 일본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에도 우리만 한 회사가 없다고 자부한다. 생산성만 놓고 보면 MSY(모돈 마리당 연간 출하 마릿수)가 유럽 평균 24마리, 덴마크 30마리인데, 다비육종은 24~25마리이고 최대 28마리에도 육박한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평균(18마리)을 끌어올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축산업뿐 아니라 방역 1세대로도 유명하다. 지금 중국의 ASF(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상황을 어떻게 보나.

▷정부가 2010년 겨울과 2011년 봄 구제역으로 인해 돼지 348만마리를 땅에 파묻고 국가 예비비 3조3000억원을 날렸던 기억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시 공무원 한 명의 판단 착오가 발단이 됐다. 지금도 비상사태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 중 57.7%를 소비하는 양돈 대국이다. 그런 중국에서 ASF가 발생해 몇 개월 만에 거의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백신도 치료 방법도 없어 살처분하는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불법 축산식품 반입 시 부과하는 벌금을 최고 500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만(1000만원)에 비하면 여전히 벌금 수준이 낮고, 발생 시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외국인 노무자 입국 거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전문가 가운데는 이미 한국에 들어왔을 거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 시 초기에만 100만마리 이상을 살처분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동안 한국에서 양돈하기에 어땠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지금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산업으로의 신규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가축사육구역 제한을 500m→1㎞→2㎞로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증개축도 안 된다. 돈을 벌어도 투자할 수 없게 해놓은 것이다. 그러니 소비도 늘고 생산도 느는데 전체 돼지고기 소비 중 33%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축산은 끝난 것 같다. 분뇨 냄새 등 각종 환경 규제도 양돈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해외 선진국만 봐도 특정 요일을 지정해 분뇨 살포를 허용하고 소비자인 국민도 이를 이해한다. 그런데 한국은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보다는 환경부와 환경단체 주도로 축산 지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방법을 알려주고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지원해주면 좋겠다.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쓸 수도 있다. 100억원 들인 메탄발효시설도 이제 시험가동 단계에 있다. 게다가 축산 생산액은 농업 분야의 46%에 달하나 예산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베트남 등 글로벌 사업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처음에는 필리핀을 염두에 뒀는데 여러 번 방문하고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계 7위의 돼지고기 생산국(마릿수로는 세계 4위)인 베트남으로 방향을 틀었다. 2003년 처음 진출할 당시 이미 베트남은 약 2700만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었다. 이후 CJ와 모돈 1080마리 규모의 합작농장을 지었고 비슷한 규모의 농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모돈 650마리 규모 농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해 한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우수한 유전자원을 보급함으로써 한돈 산업 위상을 드높이고 싶다. 2016년 중국 종돈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사료회사 중 하나인 애그리치글로벌에 투자해 고품질 영양사료를 공급하고 국내 양돈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는데.

▷65세가 되던 2010년 4월 초 나의 분신인 다비육종 사장직을 민동수 사장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넘겼다. 민 사장과는 27년을 같이 일했고, 이렇게 능력 있고 믿음직한 후임자가 있다는 게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회사를 넘기는 일 말고는 무엇이든 최종 결정은 민 사장이 할 것이다. 후계자는 혈육이냐 아니냐보다 누가 제일 잘 경영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둘인데, 큰아이가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13년간 근무하다 3년 전부터 다비육종에 합류해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민 사장 밑에서 연수 중이다.

 

■ 윤희진 회장은…

△1945년 출생 △1967년 서울대 축산학과 졸업 △1968년 삼성 중앙개발 입사 △1975년 선진축산 입사 △1986년 다비육종 설립 △1993년 도드람 양돈사업회 회장 △1995년 한국종축개량협회 부회장 △2000년 가축방역위생지원본부 상임이사 △2001년 대한양돈협회 부회장 △2005년 한국국제축산박람회 추진위원장

 

■ 민승규 교수는…

△1961년 서울 △영동고 △동국대 농업경제학과 △도쿄대 농업경제학 석·박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벤처농업대 설립 △청와대 농수산비서관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 △농촌진흥청장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한경대 석좌교수

 

[안성 =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 / 이유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